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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HF World Championship/IIHF 뉴스

2020 IIHF 명예의 전당 헌액자 - 마리안 호사

마리안 호사(Marián Hossa), 슬로바키아

주요 이력

1997년 NHL 드래프트 1라운드 12순위 오타와 세너터스 지명

스탠리 컵 우승 3회(2010, 2013, 2015)

NHL 통산 1309경기 525골 609어시스트, 1134포인트(역대 54위)

 

NHL을 대표하는 공수 겸장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호사가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했다. 신장을 사용하는 능력을 통해 퍽 간수 능력과 같은 부분에서 출중한 능력의 선수였으며, 매 시즌 30+골은 안정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득점 능력이 매력적인 선수였다. 또한, 40골 이상 시즌도 역시 3시즌이나 기록했을 정도로 훌륭한 득점력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물론 호사는 득점 뿐만 아니라 수비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던 선수였기 때문에 더욱 더 가치가 있는 선수였다. 특히 골스코어러들이 수비적인 기여가 다소 부족한 경우를 생각한다면, 견실한 백체킹 능력을 바탕으로 보여준 수비 능력은 호사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는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호사의 NHL 커리어의 경우 뛰어난 개인 능력을 가지고는 있으나, 컵을 들지 못하는 비운의 선수로 남을 가능성이 위험이 있었던 커리어였다.   NHL 첫 팀이었던 오타와에서 호사는 개인 활약 여부와는 관계없이 이상하게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크게 힘을 쓰지 못하는 시즌이 많았으며, 기회가 찾아왔던 2002~03 시즌에 팀의 에이스로서 18경기에서 5골 11어시스트로 맹활약했으나, 콘퍼런스 결승에서 당시 우승팀인 뉴저지에게 7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탈락하고 말았다.

 

이후 호사는 직장 폐쇄 시즌 이후 대니 히틀리(Dany Heatley) 트레이드의 중심 축으로서 애틀랜타로 이적했다. 애틀랜타 소속 당시에는 일리야 코발추크(Ilya Kovalchuk, Илья Ковальчук)와 함께 무서운 듀오를 형성하면서 2006-07시즌 애틀랜타의 디비전 1위에도 큰 공을 세웠으나, 1라운드에서 레인저스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다시금 포스트시즌 실패를 맛보고 말았다.

 

당시 맺었던 3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07-08시즌에는 애틀랜타의 부진한 팀 성적과 맞물려서 트레이드 마감일 이적이 유력한 선수로 거론되었고 실제로 크로즈비, 말킨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면서 동부의 강호로 부상했던 피츠버그로의 이적에 성공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피츠버그의 동부 우승에도 상당한 공을 세웠으나, 스탠리컵 결승에서 디트로이트에 막혀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으며, 다음 시즌에는 자신에게 아픔을 안겼던 디트로이트와 파격 1년 계약으로 컵 우승에 도전했으나 얄궂게도 직전 시즌 소속했던 피츠버그에 가로막히면서 2연속 준우승을 올리면서 불운의 아이콘이 되고 말았다.

 

시즌 종료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던 시카고와 12년 장기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시카고는 조너선 테이브스(Jonathan Toews), 패트릭 케인(Patrick Kane)이 득점 라인에서 본격적으로 팀을 이끌기 시작했고, 덩컨 키스(Duncan Keith), 패트릭 샤프(Patrick Sharp), 브라이언 캠벨(Brian Campbell)와 같은 선수들이 전성기를 맞이한 상황이었으며, 이외에도 브랜트 시브룩(Brent Seabrook), 크리스 버스티그(Kric Versteeg), 앤드류 래드(Andrew Ladd), 데이브 볼런드(Dave Bolland), 더스틴 버플린(Dustin Byfuglien)과 같은 20대 초반 선수들도 팀의 주축 전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전력 완벽하게 정비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호사의 영입 의도 자체는 직전 시즌까지 1라인 윙어로 활약한 하블라트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영입이었는데, 여러모로 호크스 입장에서는 빈자리 이상을 기대했던 영입이기도 하다. 호사의 지독한 불운은 시카고에서 드디어 풀리게 되었는데, 이적 첫 해에 바로 우승을 경험하면서 한을 풀었으며, 2010년대 초반 시카고 왕조에도 주축 선수로서 활약하며 팀의 3차례 스탠리 컵(2010, 2013, 2015) 우승에도 큰 기여를 한 바 있다. 피부 알레르기 문제로 인해서 선수 생활을 끝을 빙판 위에서 마감하지는 못했으나, 수비수 즈데노 하라(Zdeno Chara)와 함께 슬로바키아를 대표하는 하키 슈퍼스타로서 커리어를 보냈다는 점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